다 늙은 호스테스에게 내 인생을 걸어보려 한다
최인호, 이병주, 황석영의 글을 한 때는 참 좋아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끝내줬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시 펴자 이미 한 번 봤던 홍콩 무협영화처럼 김빠진 콜라 같다는 느낌만 준다.
젊어서 느낀 감동은 오간데 없고 저렴한 이야기꾼들의 입담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청준, 최인훈, 김승옥의 글은 처음 볼 때부터 전기가 흘렀다.
재미라는 단어가 불경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원이 다른 참신함과 저절로 심장이 빨라질 정도의 충격이 날 사로잡았다.
나이 먹고 또 책 표지를 열며 이젠 무덤덤히 볼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전혀 아니다.
처음과 동일한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예술 영화처럼 영혼까지 맑게 해준다.
이들 모두를 압도하는 작가가 있다.
재미와 감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는 다름 아닌 이문열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문열을 빼놓고는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질과 양 그리고 작품 숫자는 물론 사고의 깊이와 기발함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젠 그의 책을 거의 보고 싶지 않다.
2000년대 이후 그가 보인 정치적 행보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개인 행적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그래서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도 나는 괘념치 않는다.
이문열의 정치색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지지하는 보수에 의해 행해진 인권유린이 잊히지 않는 탓 같다.
결코 그가 이런 보수의 악행까지 옹호하는 건 아닐 것이고 보수도 긍정적인 면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또 읽고픈 욕구가 들 때면 보수정부에 의해 영혼까지 파괴당한 자들이 떠올라 영 마음이 불편해진다.
요즘 전술한 자들 중 일부는 사망했고 상당수는 노쇠 탓인지 활동이 미미하다.
이들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자가 바로 김훈이다.
아주 대단한 작가라고 소개돼 곤 하나 솔직한 내 심정으로 전술한 자들 모두에게 다소 밀리는 듯하다.
이야기 전개, 감동, 재미 모든 측면에서 김훈은 그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다만, 시대를 잘 타고났든 아니면 본인이 잘 포착했든 역사와 민족정기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효과적으로 채워줌으로써 평가절상 되었다고 본다.
이제 소설은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유튜브, 웹툰 등이 대세인 세상이다.
한 때는 강남에서 텐프로 소리 들었지만 지금은 지방 싸구려 술집에서 손님들이 주는 돈 만 원에 별 짓 다하는 호스테스가 오늘날 소설이 지닌 위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쇠락한 호스테스를 만나러 가고자 한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 하겠지만 그냥 내 피가 그녀 탓에 너무 끓어오른다.
이 호스테스가 마지막 남은 매력을 어떻게든 발산해 나에게 궁극의 행복을 줄지 아니면 꽃뱀처럼 피와 땀만 빼먹고 몰락의 길로 인도할지는 신만 알 것이다.
다 늙은 나이에 인생을 건 도박을 하려는 지금의 나에게 20년, 30년 뒤의 난 무슨 말이 하고 싶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