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중인 새 책

다 늙은 호스테스에게 내 인생을 걸어보려 한다

강명주 노무사 2022. 9. 10. 00:20

최인호, 이병주, 황석영의 글을 한 때는 참 좋아했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끝내줬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시 펴자 이미 한 번 봤던 홍콩 무협영화처럼 김빠진 콜라 같다는 느낌만 준다.​

젊어서 느낀 감동은 오간데 없고 저렴한 이야기꾼들의 입담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청준, 최인훈, 김승옥의 글은 처음 볼 때부터 전기가 흘렀다.​

재미라는 단어가 불경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원이 다른 참신함과 저절로 심장이 빨라질 정도의 충격이 날 사로잡았다. ​ ​

나이 먹고 또 책 표지를 열며 이젠 무덤덤히 볼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전혀 아니다.​

처음과 동일한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

키에슬로프스키의 예술 영화처럼 영혼까지 맑게 해준다.​

이들 모두를 압도하는 작가가 있다.​

재미와 감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그는 다름 아닌 이문열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문열을 빼놓고는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질과 양 그리고 작품 숫자는 물론 사고의 깊이와 기발함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젠 그의 책을 거의 보고 싶지 않다.​

2000년대 이후 그가 보인 정치적 행보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개인 행적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

​그래서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도 나는 괘념치 않는다.​

이문열의 정치색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가 지지하는 보수에 의해 행해진 인권유린이 잊히지 않는 탓 같다.​

결코 그가 이런 보수의 악행까지 옹호하는 건 아닐 것이고 보수도 긍정적인 면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또 읽고픈 욕구가 들 때면 보수정부에 의해 영혼까지 파괴당한 자들이 떠올라 영 마음이 불편해진다.​

요즘 전술한 자들 중 일부는 사망했고 상당수는 노쇠 탓인지 활동이 미미하다.​

이들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자가 바로 김훈이다.​

아주 대단한 작가라고 소개돼 곤 하나 솔직한 내 심정으로 전술한 자들 모두에게 다소 밀리는 듯하다.​

이야기 전개, 감동, 재미 모든 측면에서 김훈은 그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다만, 시대를 잘 타고났든 아니면 본인이 잘 포착했든 역사와 민족정기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을 효과적으로 채워줌으로써 평가절상 되었다고 본다.​

이제 소설은 사양산업이라고 한다.​

유튜브, 웹툰 등이 대세인 세상이다.​

한 때는 강남에서 텐프로 소리 들었지만 지금은 지방 싸구려 술집에서 손님들이 주는 돈 만 원에 별 짓 다하는 호스테스가 오늘날 소설이 지닌 위상일지도 모른다. ​ ​ ​

그럼에도 나는 이 쇠락한 호스테스를 만나러 가고자 한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 하겠지만 그냥 내 피가 그녀 탓에 너무 끓어오른다. ​

이 호스테스가 마지막 남은 매력을 어떻게든 발산해 나에게 궁극의 행복을 줄지 아니면 꽃뱀처럼 피와 땀만 빼먹고 몰락의 길로 인도할지는 신만 알 것이다.​

다 늙은 나이에 인생을 건 도박을 하려는 지금의 나에게 20년, 30년 뒤의 난 무슨 말이 하고 싶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