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라는 대로만 해서 얼마나 행복해지셨수?
"명주야, 퇴직금 계산할 때 휴직한 기간도 들어가냐?"
"취업규칙 등에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보통은 그렇지. 계속근로연수에 다 들어가니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내가 이달 말까지만 회사 다닐 거거든"
"그런대로 괜찮다며?“
“그렇긴 한데 사장이 좀 까다로워”
“나와서 할 일은 있어?”
“집사람이 하는 작은 공방일을 도우려고”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제수씨랑 사이 안 좋다며?”
“그래도 부부니 남보다야 낫겠지”
“잘 생각해라. 남자가 돈까지 못 벌면 여자들 진짜 무섭게 변하더라. 같은 싫은 소리라면 네 사장 같은 제3자에게 듣는 게 차라리 나을 거야”
“주변에 물어왔는데 모두가 사직하라네”
“그 사람들이 네 인생 대신 살아준대? 잘 안 풀리면 조금이라도 책임 진대?"
“우리 아버지도 나오라던데”
“네 인생 주인이 아버지냐?”
난 주변 사람들 말만 따랐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고대 진학은 꿈도 못 꾸고 아무 대학이나 갔을 것이며(고3때 너무 성적이 급락했다)
노무사 시험응시조차 못 했다(지나치게 많은 나이라 도저히 못 붙을 거라 모두가 예상했다).
지금 집도 못 샀다(전세금 반환 안 된 상태에서 미리 계약하는 건 다들 위험하다면 말렸다).
또한 누명에 대해 무혐의를 받기는커녕 적당히 거짓 자백하고 벌금형을 받았을 거다(무죄 끝까지 주장하면 괘씸죄로 더 처벌받으니 그냥 인정하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은 해댔다).
내가 써서 출간한 책 두 권도 세상의 빛을 전혀 못 본 채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을 것이다(책 써서 먹고살겠다는 내 포부에 대해서도 다수는 허튼소리라며 그저 비웃기만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의 말을 나는 안 따랐다.
한 번밖에 못 사는 내 인생이고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의 발언에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전술한 대화는 아까 친구와 나눈 것이다.
이 친구의 결정이 100프로 오판이라는 증거는 없다.
다만, 아무리 사이좋던 잉꼬부부도 남편이 경제활동을 못 하면 멀어지기 마련이기에 평소에도 까칠하다던 제수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무척이나 우려스럽다.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이혼 이야기 나오면 설렁탕이라도 사주며 위로해줄까?
설사 친부모도 자신의 예측이 벗어나면 연락 안 받고 잠수 타는 게 보통이더라.
물론 나도 옷깃을 여미고 경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단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위해서 말을 하며, 지력이 아주 탁월하거나 영혼이 무지 맑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나에게 노무사 붙을 테니 시험 보라고 권유했던 유일한 사람은 새파랗게 젊은 여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지력이 나는 꿈도 못 꿀만큼 대단했기에 나는 그녀의 말을 신의 계시처럼 무조건 믿고 따랐다.
무죄나 무혐의 반드시 나오니 절대 굴복하지 말라던 말을 해준 사람은 그 영적인 투명함이 예수 같다는 느낌까지 줬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람 말만 믿고 내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극소수 특출난 자들이 아닌 자들의 의견은 말 그대로 의견일 뿐이다.
남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산 인간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