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언론

조국 딸내미 조민 관련 고려대 시위에 참가했을 때의 소감

강명주 노무사 2022. 8. 23. 09:12

#조국 딸내미 입학의혹 진상규명 시위 참가 소감.

1. 초코파이를 줬음. 그것도 공짜로. 나 같은 먹보에겐 이게 가장 인상적임. 아무에게나 준 건 아니고 고대생이나 졸업생에게만 줬는데 노땅 선배라며 애처롭게 30여 년 전 학생증을 내밀자 나에게는 2개를 줬음. 정말 인성이 바른 학생들임.

2. 문재인 탄핵 등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틀딱이 시위대 안에 들어오기에 행사 진행하는 학생에게 바로 꼰질러서 쫓아냄. 정치색 없이 입시의 투명성을 촉구하는 집회이기에 당연히 이렇게 해야 했음.

3. 모 기자로 보이는 자가 졸업생이냐고 묻더니 인터뷰를 요청함. 근데 질문을 듣다 보니 이 기자 성향이 친정부임. 뭐라도 시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말해주길 바라는 눈치. 하지만 내가 줄곧 긍정적으로만 말하자 이러다 만약 고대 수시생 모두에 대한 전수 조사라도 들어가면 어쩌느냐는 은근한 협박성 멘트를 날림. 바로 내가 그럼 폐교 시키면 된다고 받아치자 아무 말도 못함. 인터넷 뒤져봐도 내 멘트 기사화 한 언론사 없는 걸로 보아 내 인터뷰는 스킵 한 듯. 무지 야비해 보임.

4. 중간에 응원가도 부르고 자유발언이라고 하여 학생들의 이 사태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딴짓했음. 얼마 전 구한 야설을 핸드폰으로 보느라 뭔 말 했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남. 그냥 중간중간 적당히 박수만 쳤음. 참고로 이 야설은 삼국지를 모티브로 지은 것인데 누가 썼는지 몰라도 노벨 문학상 줘야 함. 유비가 장비와의 삼각관계로 고민하는 부분은 정말 압권임.

5. 마스크 쓴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이 적지 않아 보임. 정유라 사건과 비교하며 당당하지 못하다고 하던데 당시는 박근혜와 그 일당을 제외한 모두가 한마음이라 마스크 쓸 필요가 전혀 없었음. 하지만 지금은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 정권의 실세 중 실세에 대한 사안이라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함. 특히 취업을 앞둔 학생 입장에선 더 할 것임.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만약 대학생이었다면 절대 참석 안 했음. 신재민 사건을 봐도 겁을 안 낼 내야 안 낼 수 없음. 그럼에도 참석한 학생들이 참 대단함. 혹시 이렇게 학생들이 몸을 사려서 너무 사람 숫자가 적으면 학교와 진행 측 꼴만 우스워지기에 머리수 늘려주려 참석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없었어도 상관없었을 정도로 많이 옴. 나는 마스크 작용 안 함. 

6. 참석자 수가 일부 언론에선 500, 일부에선 1000이라는데 처음에는 500 정도로 시작해서 끝날 때는 1000을 넘었음. 모인 장소가 지금은 잔디밭이지만 과거엔 그냥 운동장이었는데 나 대학 때 여기서 응원 ot를 하며 대충 어느 정도 숫자면 어디까지 차는지 감을 잡았음. 그 기억을 이용하니 1000은 조금 넘은 것으로 보임. 방학 중임을 고려하면 꽤 많이 온 것임.

7. 박근혜 탄핵 때 나를 광화문 집회에 데려간 친구 녀석 둘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가자고 했는데 둘 다 미적미적 거리더니 결국 거절함. 한 녀석이 유죄판결이라도 나면 시위해야 한다기에 그럼 박근혜 때는 왜 의혹만으로 그토록 개지랄했냐고 물으니 그냥 전화를 끊음. 나머지 녀석은 가족이 아니라 본인을 가지고 판단하라기에 그럼 왜 이명박 비판 시에 그 아들의 없는 문제도 있는 것처럼 말했냐고 캐물으니 마찬가지로 gg침. 둘 다 학생회 출신인데 진영논리가 뭔지 여실히 깨달음.

8. 해가 지자 안전상의 문제로 모두가 촛불 대신 핸드폰 플래시를 이용하여 한마음임을 표현했는데 내 핸드폰은 플래시 기능이 작동을 안 함. 고물이라 그런가 본데 무척이나 쪽팔렸음. 

9. 나의 마지막 청춘의 추억이 있는 길을 걸어서 귀가함. 정수라 노래 중 “거리마다 추억이 나를 울려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너무 사무치게 이 노래가 생각남. 날 거부했던 그녀와 그래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나. 이 여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엔 내가 손을 잡아 줬음. 아무리 생각해도 등신짓을 한 것 같음.

10. 대학 때는 시위에 거의 나간 적이 없음. 당시 사회상을 불의라고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문제가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임. 생활비와 등록금 마련이 지상과제였고 이것들을 제외하더라고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음. 나이가 들었다고 상황이 딱히 좋아진 건 아니지만 내 발로 이런 시위에 참석하는 걸 보니 마인드 컨트롤 면에서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 기분이 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