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에 대한 내 견해의 변화
#노동법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
1. 좀스럽다
휴게시간 몇 분, 임금 몇 백 원 이런 사소한 수치를 가지고 싸우는 게 너무 쪼잔해 보였다. 그까지 거 얼마나 된다고 궁상을 떠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오늘 상담한 사장도 시급 계산을 잘못하여 지급 안 한 금액이 상당하며 소멸시효 3년을 잡아도 7억 원에 육박한다.
사규나 근로계약서를 손 봐서 장래를 향해서는 어떻게든 회사의 부담을 덜어주겠는데 이미 발생한 근로자의 채권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법관이 와도 해결할 수 없으니 어서 소멸시효 3년이 지나라고 굿이나 하길 권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노동법엔 진짜 잘 어울린다. 소소하다고 우습게보다가 망하는 회사 적지 않다. 특히 이직이 잦은 요즘은 대다수 근로자들이 회사가 망하든 말든 10원 한 장도 다 받아내려 하기에 더하다.
2. 실효성이 낮다
노동법 위반해도 처벌 안하는 것이 관행이었기에 나 역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문제되면 그때 가서 손바닥 좀 비비면 될 거라는 말도 술김이지만 종종 했다.
하지만 요즘 공무원들은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 많은지 칼처럼 일하는 경우가 거의 다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노동법 위반으로 전과자 되는 사장이 한둘이 아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직원을 머슴 취급하는 조선의 잔재가 사라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난 모 사장도 가만보니 본인은 노동법을 중시하는 것 같았는데 동석한 마누라가 노동법을 개무시하는 눈치였다. 요즘 사회분위기를 알려줘도 별 일 없을 거라 자신하더니 결국 진상근로자에게 결려서 벌금 내게 생겼다. 세상 많이 변했다.
3. 쉽다
근기법과 노조법 조문 다 합쳐도 몇 개 안되기에 금방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고 열라 쉬워 보인다. 나도 수험생 초기엔 일주일이면 다 끝내리라 자신을 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 조문은 몇 개 안되는데 실무에서는 별별 케이스가 다 생기기에 어떻게 해석하고 포섭할지 감이 안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선지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유난히 많은데 말이 안 되거나 오늘날과 맞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일을 더 시켜먹으려고 근기법상의 1주일이 주말은 뺀 주중만을 의미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다보니 다툼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 과거에는 굳이 법원까지 끌고 가는 케이스가 많지 않았다.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처리하곤 했는데 요즘은 전혀 아니다. 걸핏하면 소송이다. 이러다보니 노동판례가 많이 나오는데 하급심 중에는 해당 판사가 노동법을 잘 모르는 티가 나는 판결이 적지 않다. 노동법 모르는 감독관도 문제지만 판검사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공부 안 하면 강제로라도 시켜야 할 듯하다.
4. 노사자치가 킹왕짱이다
노사가 알아서 합의로 처리하겠다는데 왜 국가가 자꾸 간섭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강행법규는 최소화하고 당사자 간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는 게 최고 같았다.
하지만 노사 간 합의는 말만 합의지 실상은 굴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쌍방이 진짜 평등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초과근로에 대한 동의조항을 근로계약서에 넣은 회사가 적지 않고 이 동의조항에 근거해 초과근로를 시키곤 하는데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초과근로는 안 할 거라고 자신 있게 입장표명할 수 있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 결국 하기 싫어도 입사를 위해 동의하는 게 대부분의 현실이다.
사용자의 지시명령권, 간단히 말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는 노사관계에서 자치란 결국 사용자에 의한 독재만을 불러올 소지가 매우 짙다. 그렇기에 진정한 자치가 가능한 회사를 희생시켜서라도 노동법상의 강행법규를 늘려서 세세한 것도 법이 규율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5. 하찮다
헌법, 행정법, 형사소송법 등 역사가 깊은 타법에 비해 노동법은 생긴 지 얼마 안 되고 특유의 법리도 적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조차 노동법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짙기에 더욱 더 하찮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노사 간 다툼을 1차적으로 규율하는 법이 바로 노동법이란 점에서 그 중요성은 절대 부정할 수 없고 근로자의 권리보호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들 중 잘나가는 직장인들은 나에게 별로 전화를 안 한다. 평소 연락이 드물던 이들 중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건 이 친구가 직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증거이고 대부분은 이 추측이 맞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최고의 무기가 노동법이기에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로 요즘은 노동법을 과거와는 달리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