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잘 타고나 놓고 본인이 잘난 덕이라 여기는 자들
60년대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무지 적었다.
20~30명에 불과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합격자 명단을 붙였다고 한다.
이러다 점차 숫자가 늘어 수백 명에 이르렀고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로스쿨 체제라 천 명 이상의 합격자가 매년 배출된다.
60년대에 사시에 도전했지만 늘 50위권인 사람이 있었다고 쳐보자.
이 사람은 합격권이 아니기에 물만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일한 사람이 가령 합격자 수가 100명인 시대에 도전했다면 바로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다.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시대와의 매치 아닐까?
가끔 만나면 항상 내가 술을 사는 선배가 있다.
노무사 수험생활을 하며 연이 맺어졌고 좋은 조언을 많이 주었기에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한때 노무사 시험은 무조건 법조문 잘 외우는 자가 킹왕짱인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법전이 안 주어졌기에 법조문을 거의 다 외워야 시험응시가 가능했다.
심지어 2차 시험에 “근로기준법 제23조에 대해 논하라” 같은 문제도 나왔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근로기준법 23조가 뭔지 기억 못하면 절대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타고난 암기력이 딸리던 나는 그래선지 계속 물을 먹었고 이 형은 암기력은 좋았지만 운이 없었는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 이 형이 드디어 포기선언을 한다.
아주 대단한 시험이 아님에도 합격 못하는 걸 보면 자신은 시험운 자체가 없다며 이제 취업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겠다고 했다.
나는 내심 부러웠지만 취업할 스펙도 없었기에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 시험제도가 바뀌며 법전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법조문 자체를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부담완화를 느꼈고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이와 같은 제도의 변화가 없었다면 절대 붙지 못했을 것이다.
이 형은 시험이 더 없이 지긋지긋 했는지 제도가 바뀌었다는 내 전화도 씹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 10년 가까이 지나고 직장에서 퇴출 위기에 처하자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동안 합격에 필요한 공부량 자체가 비약적으로 늘었기에 1~2년 하다 다시 접었다.
지금도 만나면 종종 그런다.
“그렇게 시험제도 바뀔 걸 알았다면 1년만 더 했을 텐데“.
시대를 잘 타고나서 성공한 것도 분명히 있는 자가 노력은 무진장 했지만 시대와의 궁합이 안 좋아서 소기의 성과를 못낸 자를 조롱하는 걸 가끔 본다.
사마의가 결과적으론 제갈량을 이겼지만 제갈량에 대한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사실은 이런 모순에 대한 일종의 반감의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