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종교,운명,불가사의

시대를 잘 타고나 놓고 본인이 잘난 덕이라 여기는 자들

강명주 노무사 2022. 7. 1. 11:06

60년대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무지 적었다.​

20~30명에 불과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합격자 명단을 붙였다고 한다.​

이러다 점차 숫자가 늘어 수백 명에 이르렀고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로스쿨 체제라 천 명 이상의 합격자가 매년 배출된다.​

60년대에 사시에 도전했지만 늘 50위권인 사람이 있었다고 쳐보자.​

이 사람은 합격권이 아니기에 물만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일한 사람이 가령 합격자 수가 100명인 시대에 도전했다면 바로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다.​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시대와의 매치 아닐까?​

가끔 만나면 항상 내가 술을 사는 선배가 있다.​

노무사 수험생활을 하며 연이 맺어졌고 좋은 조언을 많이 주었기에 참 고마운 사람이다.​

한때 노무사 시험은 무조건 법조문 잘 외우는 자가 킹왕짱인 시절이 있었다. ​

당시엔 법전이 안 주어졌기에 법조문을 거의 다 외워야 시험응시가 가능했다.​

심지어 2차 시험에 “근로기준법 제23조에 대해 논하라” 같은 문제도 나왔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근로기준법 23조가 뭔지 기억 못하면 절대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타고난 암기력이 딸리던 나는 그래선지 계속 물을 먹었고 이 형은 암기력은 좋았지만 운이 없었는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 이 형이 드디어 포기선언을 한다.​

아주 대단한 시험이 아님에도 합격 못하는 걸 보면 자신은 시험운 자체가 없다며 이제 취업해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겠다고 했다.​

나는 내심 부러웠지만 취업할 스펙도 없었기에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 시험제도가 바뀌며 법전이 주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법조문 자체를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부담완화를 느꼈고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이와 같은 제도의 변화가 없었다면 절대 붙지 못했을 것이다.​

이 형은 시험이 더 없이 지긋지긋 했는지 제도가 바뀌었다는 내 전화도 씹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 10년 가까이 지나고 직장에서 퇴출 위기에 처하자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동안 합격에 필요한 공부량 자체가 비약적으로 늘었기에 1~2년 하다 다시 접었다.​

지금도 만나면 종종 그런다.​

“그렇게 시험제도 바뀔 걸 알았다면 1년만 더 했을 텐데“.​

시대를 잘 타고나서 성공한 것도 분명히 있는 자가 노력은 무진장 했지만 시대와의 궁합이 안 좋아서 소기의 성과를 못낸 자를 조롱하는 걸 가끔 본다.​

사마의가 결과적으론 제갈량을 이겼지만 제갈량에 대한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사실은 이런 모순에 대한 일종의 반감의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