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군상,인간관계,대화법

매너 없는 중년의 전형(feat: 친구에게도 지킬 건 지켜야지)

강명주 노무사 2022. 6. 21. 01:15

요양원에서 막 나왔을 때의 일이다.

 

중년에 가까운 나이지만 경력은 전혀 없이 돈도 간당간당 했기에 앞길이 막막했다.

 

일단 알바자리를 구하고 대학시절 친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다들 큰 조직에 몸을 담고 있기에 혹시 계약직이라도 필요하게 되면 꼭 좀 원서를 넣고 싶으니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 소문이 어떻게 돌았는지 몰라도 반 정도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부담스러워하거나 쌩까는 분위기였다.

 

이 중 한 친구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회사 근처로 오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에 어렵게 구한 양복까지 입고 나갔는데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락을 해보니 중요한 미팅 중이라며 좀 기다리라고 했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재촉하기도 뭐하기에 그냥 기다렸는데 2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다시 전화 해보니 나를 깜박하고 귀가했다며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한다고 했다.

 

아무 말 않고 나는 돌아왔고 이 일은 까맣게 잊었다.

 

지난달에 이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술한 약속이후 근 10여년 만인데 다짜고짜 사장들을 소개해 달란다.

 

명퇴 위기에 처했는데 실적을 내면 빠져나갈 수 있다며 각종 금융상품을 팔 사장들을 알려달라는 거다.

 

내가 노무사란 소문을 듣고 이런 듯하기에 나름 괜찮은 사장들을 소개해줬다.

 

아까 오전에 자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실적을 더 올려야 한다며 또 알려달란다.

 

이젠 알려줄 사장들이 없다고 하자 화를 낸다.

 

친구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알아봐줘야 하지 않느냐며 마치 사채업자처럼 독촉을 한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때 시간이 아침 7시였다.

 

애가 아직 중학생이고 아내는 전업주부이기에 자신이 꼭 돈벌이를 해야 하는 이 친구의 처지는 나도 이해한다.

 

중년들의 재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란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친구란 이유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계속 이러는 건 너무 한 것 아닐까?

 

나쁜 일은 잊고 좋은 일만 기억하자는 신조가 오늘 아침엔 깨졌다.

 

과거 그 카페에서 6시간을 기다리며 느낀 자괴감과 울분이 말 그대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매너 없이 본인만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친구로 삼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너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