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시험 포기에서 나를 구해준 한 마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합격해. 그리고 계속 백수로 지내"
대학교 2학년 겨울, 나는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했다.
특별히 다른 학교나 다른 과로 옮기겠다는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이 그저 고등교육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자퇴서를 들고 간 나에게 교무과 직원은 좀 더 생각을 해보고 오라고 했다.
그냥 받아달라고 우겼다면 별 문제 없이 통과됐을 텐데, 한 달 뒤 다시 오라는 그의 말을 나는 바보처럼 따랐다.
한 달간 아는 사람들에게 문의를 했고 졸업장의 중요성을 다수는 이야기했지만 나에겐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단 하루도 더 살기 싫을 정도였기에 개소리로만 들렸다.
그 중 한 사람이 그랬다.
졸업장은 보통은 취업에 많이 사용되는데 이런 거 전혀 생각 말고 그 자체에 의의를 둬보라고.
졸업 후 취업을 안 하고 백수로 지낼망정, 졸업을 했다는 사실은 4년간의 성실함을 어느 정도는 입증해주니 졸업 뒤는 생각 말고 졸업 자체만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이 말엔 끌렸고 나는 결국 졸업장은 땄다.
물론 그 후 자의반 타의반 계속 백수로 지냈기에 아주 오랜 기간 졸업장은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꽤나 늙어서 노무사가 된 뒤 수급처를 구할 때와 업무에선 무진장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많았지만 고대 나왔기에 뽑았다는 말을 대놓고 들었고 각종 강의기회나 큰 일거리 얻는데도 고대 졸업장은 굉장한 역할을 한다).
중년의 나이에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며 논술에 젬병인 나의 무능함을 자꾸 절감하다보니 그저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그만두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합격하고도 내 성향 상 거의 일을 안 할 테니 합격해도 무의미하다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려 했다.
이런 나에게 아는 형이 전술한 말을 했다.
붙고도 백수로 지낼 거면 왜 그 고생해서 붙어야 하느냐고 내가 반론을 펴자, 그냥 백수보다 자격증 가진 백수가 더 있어 보이고 능력이나 의지 부족 탓에 도망가는 게 아니란 걸 이렇게라도 증명해야 내 남은 인생이 더 편해질 것 같다고 그는 재반박을 했다.
왠지 내가 외통수에 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전술한 말은 어떻게든 합격한 뒤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어대고 싶다는 오기 역시 불러일으켰기에 나는 계속 매진하여 합격했다.
아까 낮에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수험생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나이가 있기에 더 힘들 텐데 딱히 해줄 말이 없기에 지금 여기에 끄적이는 걸 말해줬다.
여담이지만 선천적 게으름 탓에 일을 거의 안 하는 내가 그래도 요즘 굶어죽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노무사 라이센스다.
이 자격증 덕에 한 달에 채 10시간도 일 안하지만 나는 적당히 먹고 산다.
게다가 여차하면 출근 안 하고 평일 대낮에도 사우나나 마트 등에 자주 가는 나를 백수라고 무시하는 자들에게 노무사란 한 마디를 하면 바로 태도가 변한다.
정 힘들면 그만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힘들기에 합격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지금의 포기를 관 뚜껑 닫을 때도 후회 안 할 자신 있다면 그대로 책을 덥되, 그렇지 않다면 계속하는 걸 추천한다.
합격 후는 생각 말고 합격의 그날, 합격이란 두 글자를 확인 할 때의 희열만을 자꾸 떠올린다면 공부가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