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합격자 발표일마다 하는 다짐:
오늘은 올해 노무사 시험 합격자 발표일이다.
약 6시간이 지나면 큐넷 홈페이지에 명단이 뜨고 희비가 완전히 엇갈리게 된다.
이 시험에 합격한 지도 꽤 되기에 이젠 무덤덤해질만도 하건만 난 여전히 이 날이 오면 수험생마냥 긴장이 된다.
응시하던 당시 내 상황이 너무 안 좋았고 시험을 완전 망쳐서 불합격만 기대했으며 이 합격으로 인해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기에 그런가보다.
가족, 친구와도 모두 연이 끊긴 채, 말 그대로 혼자인 상태에서 이 시험을 준비했고 이미 누차 물을 먹었기에 합격하던 그해 내 상황은 막장 그 자체였다.
또 떨어질 경우, 다시 도전할 의지도 돈도 없었기에 ‘불합격’이란 단어를 다시금 보는 순간 어디 멀리 가서 생을 끝내자는 각오만 했었다.
그때도 아침 9시면 큐넷 홈피를 통해 합격자 확인이 가능했지만 나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당시 주업인 노가다도 안 나간 채, 이미 불합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꿈속으로 현실도피를 했다.
그러다 밤 11시가 다 되어 더 이상 잠도 안 오기에 일어났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왠지 거제도에 가보고 싶어서 여행준비를 한 것이다.
새벽 1시가 되어 짐을 다 쌌고 고속버스표를 알아보러 컴퓨터를 켰다가 과연 얼마나 개판인 점수가 나왔는지 확인만 하고자 큐넷에 들어가 보니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합격‘이란 두 글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너무 합격을 바라다보니 헛것이 보인다고 여긴 나는 옆방에서 자고 있던 지인을 깨워 이 단어가 진짜 ‘합격’으로 보이는지 확인해달라는 촌극도 벌였다.
합격 후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사고로 인해 상당기간 사회에 진출 못 하고 허송세월했다는 나의 치명적 단점을 노무사 자격증은 너무도 훌륭히 매워주었다.
일단 노무사라고 하면 누구도 내 과거를 묻지 않았고 무직이나 일용직이라고 밝힐 때와는 천양지차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한때 누명을 쓰고 검경에 끌려 다니며 무척이나 고생을 했었는데 이 때도 노무사란 내 직업 덕에 기본적인 대우는 충분히 받았고 결과적으로 무혐의가 나오는 데도 노무사 라이센스는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노무사로 개업한 후에도 내 특유의 게으름은 여전했기에 열심히 일하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돈이 모이더니 내 한 몸 뉠 아파트를 예상보다 대단히 빨리 구매하는 데 성공한다. 관련 대출금도 다 갚았기에 이젠 온전히 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늘 무서워하던 내 성향이 노무사 자격증 덕에 거의 다 사라졌다. 노동법 관련 일을 하며 세상이 어떤 매카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알게 되자 이 원리를 다른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었고 결국 사회가 용인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며 나의 공포는 눈 녹듯 없어져버렸다.
한때는 노무사란 자격증에 만족 못 한 적이 있다.
더 좋은 자격증을 왜 못 땄는지 스스로를 비난하며 하늘을 원망했었다.
하지만 내가 들인 노력과 나의 타고난 지능을 생각해보면 노무사 자격증도 나에겐 대단히 과분하다.
국가고시급 시험에 붙을 머리가 전혀 아님에도 내가 선택한 과목인 노동경제학의 대박으로 다른 과목들의 낮은 점수를 커버하고 합격했기에 하늘에 천만 번도 더 나는 감사해야한다.
그리고 국민 거의 다가 사장 아니면 근로자인 현실에서 노동에 대한 관심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높아져만 가기에 노무사의 위상과 할 일은 증가하면 증가하지 절대 축소될 리 없고,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진짜 딱인 자격증이란 점에서도 내가 노무사를 딴 것은 천운이다.
그때도 불합격이란 단어를 보았다면 내 인생은 어찌 풀렸을까?
그들에 대한 복수를 마침내 감행하고 지금은 차가운 교도소 안에 있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종합할수록 합격일만 되면 나는 다짐하게 된다.
하늘은 나에게 많은 어려움도 주었지만 노무사란 도저히 내가 딸 수 없는 자격증을 줌으로써 화해를 시도했고 그 손길을 잡아주는 게 내 의무라고.
노무사보다 더 대접받는 자격증을 원한다면 그걸 따면 그만이다.
이런 자격증을 가진 자들은 그만큼 더 노력하고 고통을 겪었기에 지금의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약간은 부럽지만 이젠 노안老眼 탓에 다른 자격증 공부는 할 수 없고 무엇보다 노무사 자격증에도 120프로 만족하는 요즘이다.
특히 사회가 인정해주는 좋은 일을 하기에 아주 유용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영역에 날 낙하산으로 꽂아준 하늘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투정은 정말 천벌 받을 짓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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